두근두근 펜팔 연애,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 - 121/1000

 

언젠가의 리디 마크다운 때 평이 좋아서 냅다 샀지만 귀차니즘으로 인하여 한동안 안 읽고 내버려 두었던 책이다. 그러나 어느 날 혼잡하게 끼여 앉아 40분을 가야 하는 지하철에서 심심해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휴대폰으로 책을 펼친 후에는, 너무 재미있어서 쉬지도 않고 그날 내내 읽어 끝을 보고야 말았다.

글이 메일과 편지 형식으로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초반에는 몰입이 힘들 수도 있지만, 조금만 꾹 참고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자! 너무나 탄탄하게 잘 쓰인 소설이라 분명히 금세 푹 빠지고 말 것이다. 작가의 기본기가 좋고, 문장력이 좋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도 좋다. 물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좀 과하게 욕심을 부려 떡밥을 던진 것이 아닌가 (솔직히 전부 회수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싶지만, 전반적으로 아주 재미있고 신선한 소설이었다.

일단은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뻔하디 뻔한 틀에서 벗어난 것 만으로도 신선도 점수를 100점 드리고 싶...! 소재가 넘나 참신하다. 출판사의 에디터인 여주가 아주 오래전에 출판된 히트작의 다음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어 작가와 컨택했다가 벌어지는 일련의 놀라운 사건들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다른 세계에 있는 왕자님과 마법의 힘으로 편지를 주고받다가 서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이야기라니 두근두근 설레고 로맨틱한 느낌이 물씬 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서로 교류도 못하는 다른 세계에 있는데... 이 사람들, 어떻게 만나지? 

작가가 이 부분을 풀어내기 위해, 그리고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한 건 알겠는데 아무래도 시간과 공간이 왔다갔다하고 수도 없이 섞이면서 소설 뒷부분에는 살짝 어설프거나 도저히 정리가 안 되는 부분이 제법 있었다.

작가는 타임라인을 제대로 그려놓고 필기도 하고 도표도 그려보고 짚어가며 소설을 썼을테지만, 읽는 독자들은 보통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니 너무 헷갈린다. 이 소설 속의 타임슬립은 평행세계가 아닌 그 세계의 과거와 미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 헷갈린다. 그래서 누가 누굴 만나고 누가 누굴 없앴고 지금은 몇 번 돌아간 거야? 얘는 어디 있는 거야? 하고 헷갈리는 도중에 어쨌거나 여주 남주가 만났다고 하니 아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에라 모르겠다 싶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타임라인을 조금만 덜 복잡하게 만들었으면(혹은 깔끔하게 정리 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그리고 뒷부분을 많이 차지하는 에드위나 공주와 라이너 황자의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는 제법 좋았고, 이 커플도 공주가 멱살 잡고 이끌어가는 관계라는 점에서 신선하기도 했는데 라이너 황자의 말투는 정말이지 끝까지! 절대! 적응할 수 없었다. 나이 든 유모에게 외국어를 배워 나이 든 할머니 말투를 구사한다는 설정을 굳이 굳이... 로맨스 소설에서 끝까지 그대로 구현했어야 하는지...
"음, 얘야, 나는 못 쓴단다. 으음, 나는 글도 잘 못 쓰구우, 읽는 것도 잘 못해애애."
"그러게. 우리는 운명인가 보아아아. 그렇지이이이."
이렇게 말하는 왕자는 아무리, 아무리 외모가 아름답다는 묘사가 있더라도, 평생을 바치는 순정파더라도 도저히 이입을 할 수가 없다.... 로맨스 소설에서 왜! 이런 설정이 필요하지?! 하는 생각을 수십 번 하게 만든... 사실 라이너 황자 말투 때문에 하차할 뻔했다.

 

그렇더라도 전반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신선했고, 참신했고, 귀여웠다.
이 세계의 사람과 주고받는 비밀스러운 편지라는 설정만으로 판타지스러움이 배는 증가하고, 고전적인 로맨스가 물씬 살아나는 느낌이어서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