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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오스카 와일드, 나락으로 떨어지다 [심연으로부터] - 111/1000 본문
문학계의 총아, 옥스퍼드의 수재, 반짝반짝 빛나는 천재적 글솜씨, 걸출한 입담, 성공한 극작가. 유미주의의 정점이자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었던 그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이야기는 오스카 와일드를 모르는 사람도 한 번씩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쓴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도리언 같은 미남, '앨프리드 더글러스'를 만나 인생의 나침반이 빙글빙글 돌아버린 그는 동성애 스캔들 끝에 감옥에 가게 되었고, 출소한 이후 몇 년 되지 않아 생명력이 꺼져가는 불처럼 시름시름 앓다 많지 않은 나이에 죽는다. 그 소송은 앨프리드의 아버지와 휘말린 것이었는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어린 남친은 아버지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자고 오스카를 부추겨 사건을 악화시키고 결국 오스카는 소송에서 지고 만다. 만인에게 사랑받던 인기인인 그가 한순간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광장에 목이 내걸리는 심정으로 감옥에 들어갔는데도,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원인을 제공한 남자 친구는 오스카를 나 몰라라 하고 모든 책임은 혼자 져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으니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감옥에서 분노에 사무치기도, 슬퍼하기도, 때로는 분노를 토해내며, 어떨 때는 모든 것을 용서하며 틈틈이 썼던 글이 바로 '심연으로부터'
박명숙 번역가님이 옮긴 이 문학동네의 '심연으로부터'가 번역이 진짜 짱!!! 잘되어있어서 이 번역본을 적극 추천한다. 나도 번역 연습하면서 원문 일부를 번역한 적 있는데 정말 어려웠던 기억이 ㅠㅠ 책 전반이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너무나 섬세하게 번역되어있고 편집되어 있어서 정말 놀랐고 감탄했다. 본문을 읽기 전에 알면 훨씬 본문에 푹 빠져들게 되는,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나 이 스캔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책 앞부분에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를 따라가며 보여주는 사진들도 매우 흥미로웠다. 번역가가 정말 깊은 고심과 연구를 해가며 번역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번역을 할 수 있기를...) 책의 각주 또한 번역가가 섬세하고 자세하게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한 티가 팍팍 나므로 꼭 같이 병행하여 읽어보도록 하자. 나는 이북리더기로 읽어서 본문과 각주를 빠르게 왔다 갔다 할 수가 없어 매우 아쉬웠다. 이북리더기는 각주가 많으면 너무 불편함 ㅠㅠ
그의 섬세한 영혼이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어떻게 아름다움의 광채를 잃고 차가운 감옥의 밑바닥에서 슬퍼하고 있었는지, 그렇지만 감옥에서의 경험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소중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려는 모습이 글 한 마디 한마디에서 절절히 느껴져서 책을 읽는 내내 몹시 슬프기도 했으며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책 내내 그가 토해내는 분노 -어린 남친이 그동안 어떻게 자기 돈을 펑펑 썼으며, 자신에게 무례했으며, 경우가 없는지 - 가 느껴지기도 해서 공감과 눈물과 조금의 웃참 (헤어지고 나서 자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동안 있었던 일이 빡쳐서 일기에라도 이 개새끼야! 하면서 분노를 토해내는 내 모습이 생각나서...ㅋㅋㅋㅋ).. 물론 욕이 절반인 내 일기보다는 그의 편지가 훨씬 더 우아하고 수려하지만 말이다.
결국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감옥에서의 이 경험은 현실이고 자신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며, 고통은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고, 그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감옥에서의 시간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려 그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내내 견딜 수 없는 불명예에 대한 기억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 또한 다른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내게도 소중한 것들—해와 달의 아름다움, 계절의 행렬, 새벽의 음악과 깊은 밤의 침묵, 나뭇잎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빗물, 잔디 위로 살금살금 기어가며 잔디가 은빛을 띠게 하는 이슬—이 내겐 모두 어두운 기억으로 더럽혀지고, 그것들을 치유하는 힘과 기쁨을 전달하는 힘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야. 자신의 경험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야. 자신의 경험을 부인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입술에 거짓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부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이제 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지고한 감정인 고통이 모든 위대한 예술의 전형이자 시금석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아. 즐거움과 웃음 뒤에는 거칠고 엄혹하고 냉담한 기질이 있을 수 있어. 하지만 고통 뒤에는 언제나 고통이 있을 뿐이지. 기쁨과는 달리 고통은 가면을 쓰지 않아.
내가 교도소 문을 나서는 날, 뜰에 금작화와 라일락이 만발할 거라는 생각과, 바람이 불안정한 아름다움으로 금작화의 금빛을 물결치게 하고, 깃털 장식 같은 라일락의 창백한 자줏빛을 흔들리게 해 마치 아라비아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뻐서 몸이 떨려오거든. 린네는 처음으로 영국 고지대의 기다란 황야가 평범한 골담초의 향기나는 황갈색으로 노랗게 물든 것을 보고 꿇어앉아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지. 그리고 나는, 꽃들이 욕망의 일부분인 나로서는 장미의 꽃잎 속에서 나를 기다리는 눈물이 있다는 것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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