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고 흥미로운 잡동사니 상자

허지웅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 - 110/1000 본문

BOOKS

허지웅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 - 110/1000

INCH_ 2021. 12. 15. 03:14


개인적으로 먼저 말하자면, 나는 허지웅 씨를 별로 안 좋아한다. 악플 다는 안티 이런 건 아니고, 이 사람의 까칠한 성격이나 심드렁한 시니컬함 같은 게 별로라고 생각해서 크게 좋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평론가, 칼럼니스트라는 걸 알기 전에 TV에 나온 걸 먼저 봐서 그냥 그런 연예인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의 책을 읽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그 사람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하는 점을 발견하게 되어 의외의 면이 조금 좋아지기도 하고,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도 나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통해 느끼게 되는 새로운 점이 매우 많다. 끝까지 나와는 안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렇다. 이미 누군가 써 둔 글에 내가 누가 틀렸네 맞네 반박을 하면서 화를 낼 수 도 없는 노릇이므로, 감정이나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한 풀 죽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읽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허지웅 씨의 글을 읽은 것은 이 책이 처음은 아니고, 인터넷에 많이 떠돌아다니며 주기적으로 회자되는 그의 가족사 이야기나 칼럼 몇 편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글은 담담하고 건조한 편이지만, 한편으로는 섬세하고, 꾹꾹 눌러 담은 것 같은 울분의 감정이 글 아래 일렁대며 비치는 느낌이었다. 글을 통해 이 사람의 개인사가 몹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의 성격이나 태도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사람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의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벌써 10년 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이 대부분이므로 옛날 느낌이 많이 나고, 정치적인 글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내가 이명박을 좋아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의 정치적 성향에 온전히 동조한다고 할수도 없다), 그도 이 글들을 썼을 때는 훨씬 어렸던 만큼 글은 요즘 쓴 것 보다도 비릿하고 씁쓸하고 거칠고 독기 가득한 느낌이 났다. 신기하게도 요즘 그의 글은 좀 더 진중하거나 차분한 느낌이 나는데, 아무래도 그도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나이를 먹었는지.

모두, 각자의 삶에서 버틴다고 정신이 없다. 조금 더 요동치는 삶이 있고 조금 더 잔잔한 삶이 있다 한들, 더 흔들리는 삶을 가지게 된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고 그 위에서 끝까지 버티는 것은 자기 몫이다. 그리고 우리는 흔들리는 삶 위에서 멀미가 나더라도 미끄러지더라도 멀미약을 씹어먹으며 끝까지 버텨내 보아야 한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나보다 더 흔들리는 판 위에서 이를 악물고 굳세게 버티는 사람을 보면 사람은 참으로 얄팍하고 간사하게도 저게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고, 저 사람도 열심히 버티는데 나도 열심히 해봐야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허지웅의 글은 그런 느낌이 많이 났다. 그리고 나는 참으로 얄팍한 사람이므로,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상처를 과시할 필요도, 자기변명을 위한 핑곗거리로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짊어질 뿐이다.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뿐이다. 살아가는 내내 말이다.

괴로워도 담담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일을 향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