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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 당신은 개인주의자인가요? - 101/100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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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 당신은 개인주의자인가요? - 101/1000

INCH_ 2021. 7. 26. 18:41

 

사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초반 글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읽으면서 그래! 이게 바로 내 기분이야! 그래! 한국이 이게 문제야! 를 수십 번 외쳤다.

한국에 와서 정착한 지 5년 차, 이제 온연한 한국인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나름 어떻게 잘 정착해 살고 있지만 외국에 오래 살아 이리저리 조금씩 뒤섞여있는 내 정체성은 한 번씩 한국사람들의 이상한 꼰대 문화와 단체 문화에 의문을 던져댄다. 모든 것이 빠르고 친절한, 너무 살기 좋은 한국이지만 한 번씩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물론 어느 나라건 좋은 점 있고 나쁜 점 있기에 한국이 살기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인인데, 한국에 안 맞는 걸까? 한국이 뭐가 다르지? 하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외국에 있었던 단편적인 순간들이 그리워지곤 했다. (물론 그 나라들도 다 좋지 않았다. 오고 나서 기억이 희미해지니까 좋은 거지)

난 가끔 대나무 숲에라도 가서 마음속 구석에 쌓인 외침을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놈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견뎌야 하는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싫다고 말이다. 눈치와 체면과 모양새와 험담과 공격적 열등감과 멸사봉공과 윗분 모시기와 위계질서와 관행과 관료주의와 패거리 정서와 조폭식 의리와 장유유서와 일사불란함과 지역주의와 상명하복과 강요된 겸손 제스처와 모난 돌 정 맞기와 다구리와 폭탄주와 용비어천가와 촌스러움과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개인주의자 선언 17p

나도 어떨 때는 외치고 싶었다. 최대한 열심히 피해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몇 달 일찍 입사한 선배랍시고 꼰대 문화를 강요당하는 때도 있었고, 회사 선배라는 이유로 성희롱을 참아야 하는 일도 있었고, 가기 싫은 남의 결혼식에 가서 아마 돌려받지도 못할 돈을 내야 할 때도 있고, 모난 돌 정 맞기도 조폭식 의리도 뭔지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싱가포르에 가 덩그러니 혼자 살기 시작했을때, 그래도 한국인들을 좀 알아두면 좋겠다는 마음에 20,30대 젊은 한인들이 한 번씩 만나 노는 모임에 참석했더니 나보다 3-4살이나 많으려나 싶은 한 남자가 계속 시비를 걸었다. 자기 앞에 술잔이 비었는데 술을 왜 안따라주냔다. 아니 내가 술집 여자도 아니고 자기가 따라 마시거나 술 좀 따라달라고 좋게 말하면 되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나는 그 남자가 그렇게 꼰대질을 하며 강짜를 부리는 모습 자체가 정말 어이없고 생소했다. 그 남자는 술 잘 못 배웠네~ 하고 깐족거리며 심부름을 시켜댔고 나는 억지로 웃다가 집에 가서 바로 모임을 탈퇴했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나를 꼭 집어서 그런 태도를 취했던 건 27살이었던 나를 가스라이팅 하고 후려쳐보려고 했든지 이상하게 자신의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이후로 회사 사람들 몇 명 빼고는 다시는 싱가포르 한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상하관계나 꼰대 문화에 쥐약인 사람이다. 이제 나도 나이 먹고 다시 보니 나이로 유세부리는게 정말 편한(?) 방법이긴 한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나이로 유세 부리는 건 너무 없어 보인다. 가끔 꼰대 마음이 생기려고 할 때, 젊은 날 그런 사람들을 극혐 했던 내 자존심이 야, 너는 그렇게 꼰대가 되면 안 돼, 하고 한 번씩 불쑥 일러주곤 하더라. 그래서 이 책의 이런 "꼰대 극혐" 구절들이 구구절절 공감이 갔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꼰대, 유세 부릴 수 있는 판사님이 이런 말을 해주시다니ㅠㅠ 혐오스러운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나, 대단한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흔히들 첫번째 질문만 생각한다. 살집이 좀 있는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참말이기는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낼 필요는 없는 말이다. 사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두 번째 문만 잘 지켜도 대부분의 잘못은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필요 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개인주의자 선언, 137p

개인주의자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 개념이 많이 혼동되는데, 개인주의는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어느 정도 지켜지는 거리가 있었으면 하는 것일 뿐, 이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한국식 단체 문화에서 '아, 저는 빠질게요'라고 하는 것이 너만 빠지냐? 하고 이기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럼 다 같이 빠지면 좋을 텐데... 이 사람들 욕은 해도 빠지진 않더라.ㅋㅋㅋ 

한국식의 위계질서와 상명하복과 상하관계에서는 막말을 하기도 쉽다. 아무래도 서열이 정해지니까, 나보다 서열이 낮은 사람에게는 말을 편하게 하게 되고, 그 편하게 하는 것의 기준이 사람마다 정말 다르지 않고 선을 넘기도 쉽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필요 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한국식의 스트레이트 화법이 편할 때도 있지만, (일본에서 살 때는 특유의 극도로 돌려 말하는 화법이 정말 힘들었다) 한국 사람들도 조금은 세 황금 문을 지나온 말들을 내뱉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개인주의라는 개념이 더 깊게 박히고, 상대를 존중하는 사고방식이 스며들어야 가능할 것이다. 

 

여러 가지 사회의 가치를 다루면서도 이런 가치와 개인주의가 어떻게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면 좋겠는지, 이제까지의 한국적인 정서들에 대해 어떻게 타협해나가면 좋겠는지 등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어서 생각할 점이 많았다. 그렇지만 책 초반부의 "개인주의자" 이야기 자체는 뒤로 가면서 좀 희미해지고 다른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아쉬웠다. 중반부의 정치 얘기가 가득 나올 때는 이게 개인주의자 책인지 정치견해 에세이인지 헷갈릴 정도로... 중반부에는 내가 원하던 스토리가 아니어서 그런지 독서 페이스도 많이 떨어졌다.ㅠㅠ 이 책의 초반부에 극도로 공감하게 되어 책을 끝까지 넘긴 "개인주의자"들은 아무래도 한국 정치 이야기는 (어느 쪽임을 떠나서) 신물이 나서 듣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문유석 판사 개인의 생각 정리 에세이 느낌보다는 조금 더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내용들로 가득 채워졌다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 같다.

 

👇👇 한번 책을 읽어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링크로! 👇👇

개인주의자 선언: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학동네

 

개인주의자 선언: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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