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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뛰어넘는 존잘 "울어봐, 빌어도 좋고" - 117/100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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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뛰어넘는 존잘 "울어봐, 빌어도 좋고" - 117/1000

INCH_ 2022. 3. 22. 16:39

117/1000 - 취향을 뛰어넘는 존잘 "울어봐, 빌어도 좋고"

내가 별로 취향 아닐 것 같은 이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아마 더쿠의 영업글이 컸던 것 같다...(이 글👉 https://theqoo.net/romancefantasy/1998643335 영업 대존잘임)
약간... 로판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영업하기 쉽지 않은데 코어 팬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이었곸ㅋㅋㅋㅋㅋㅋㅋ
이리저리 계속해서 들리는 소리로는 문체나 글을 이끌어가는 방식이 굉장히 좋다고 해서 결국 나도 고집을 접고 읽어보게 되었다.

뭐랄까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정말 정말 내 취향 아닌데
소설 같은걸 쭉쭉 읽다 보면 중간에 읽다가 으 나랑 안 맞다 싶어 하차해도 하나도 안 아쉬운 소설이 있고
존잘력으로 취향도 아닌 소설 읽는 사람들을 멱살 잡아 어떻게든 끝까지 읽게 만드는 글들이 있다.
장르소설 분야에서 이런 책 만나기 쉽지 않은데 이 소설은 후자였다. (개인적으로는 BL '불우한 삶'이랑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도 스토리는 진짜 취향 아니고 설정 구멍도 많았는데 작가가 너무 존잘이어서 멱살 잡고 끌고 가는 바람에 허우적거리며 끝까지 다 읽었던 기억)

일단 요즘 범람하는 여느 로판과 다르게 회귀, 악녀 등등 온갖 클리셰를 다 산뜻하게 빼고 시작하는 점, 다른 소설과 차별되는 스토리, 특이한 배경(1900년대 느낌이 나는 로판은 많지 않다.)등은 정말 좋고 신선했다. 신선해서 별로인 소설이 있고 신선해서 정말 좋은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은, 역시나 후자다. 작가의 여러 설정들이 의외로 매우 탄탄하고, 풍경의 묘사나 색깔의 묘사, 사람에 대한 묘사를 매우 잘해서 마치 그 세계를 살고 있는 것처럼, 내가 그 광경속에 들어가서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것 처럼, 그렇게 몰입해서 읽었다.

정말로 한 편의 영화를 글로 보듯, 이런 장면들을 어렵지 않게 상상하며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왜 그 '더쿠 영업글'이 이렇게 아름다운 감성 이미지를 잔뜩 모아놨는지 이해가 됐다. 정말로 그런 소설이었다. aesthetic novel이라는 장르가 있다면 이 소설은 꼭 그렇게 분류해야만 할 것 같았다.

가녀린 금발의 레일라와, 차가운 헤르하르트 공작의 이미지나, 그들이 맞닥뜨린 상황이나, 배경이나, 헤르하르트 숲이나, 저택의 풍경 등.... 
과하지 않으면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묘사가 이렇게나 사람의 마음에 와닿는 것이었구나.

물론 주인공들의 성격은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들었다. 이들의 관계는 로맨틱한 찐사라기보다는 협박과 강간으로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는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수밖에 없고, 나도 아무리 읽어도 응... 이건 아니지 않나? 으음...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얼쑹덜쑹하고 아리송한 기분으로 읽어나갔을 뿐, 여주를 단지 정부 취급하는 남주도(소설의 3/5까지는 계속 이런듯), 뭐 확실하게 말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대처도 못하고 맨날 눈물만 흩뿌리며 어영부영 어버버버 가냘프게 끌려다니는 여주도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다 ㅋㅋㅋㅋㅋ 

솔직히 후회남주?냐고 하면 내 기준 별로 헤르하르트가 고생한 것도 후회한 것도 없어 보여서 후회 남주도 아닌 듯하고,
처음에 그렇게 강간당하고 능욕당하고 눈물바람 쏙 빼고서도 결국 남주를 사랑하게 되는 여주도.... 내 기준에서는??이고
(자기를 강간한 사람이 너무 잘생기고 아름다워 결국 사랑하게 되고 아이도 낳게 되었다! 뭐 이런 스토리가 그...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로판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취향을 확실하게 공략함으로써 어마어마한 코어 팬을 양성해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인물의 묘사, 노란 카나리아나 하얀 장미, 장밋빛 하늘, 금빛의 날개 같은 머릿결 등 색깔이 뚜렷한 미학적인 요소들을 글 속에서 잘 엮고 연결시키면서 눈앞에서 영화를 보듯 소설을 정말이지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고, 늘어지지 않고 쉴 새 없이 계속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또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어가며 휘몰아치는 스토리가 몰입감이 넘쳐서 재미있게 읽었다. 두 번은 못 읽을 것 같지만... (스토리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ㅋㅋㅋ 외전도 내 취향 아니었다.)

그러나 멱살 잡혀 끌려가듯, 강제로 입에 들이붓듯 존잘력으로 취향도 아닌 글을 읽은 것은 오랜만이라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치 눈으로 본 것만 같은, 칼스바르의 헤르하르트 저택과, 호수와 지저귀는 새들이 아름다웠던 숲, 자전거를 타는 레일라, 마치 초여름의 풋풋한 향기가 나는 것만 같은 싱그러운 소설의 여운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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