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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서문의 시 'All in the golden afternoon' 이해하기

INCH_ 2021. 9. 25. 23:18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책 맨 앞장에는 작가 루이스 캐롤이 쓴 시(All in the golden afternoon)가 있는데, 시가 그렇듯 아무래도 제대로 된 번역이 어렵고 오역도 많아서 시 자체의 가치도 한국에서는 잘 몰라줄 뿐더러, 시의 번역된 여러 버전을 읽어봐도 딱히 이 시가 어떤 느낌인지 전달되지도 않는다. 시나 문학은 번역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점이 새삼 느껴지는 ㅠㅠ

그래서 이 시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읽으면 좋은지, 어떤 느낌인지 짧게라도 적어보려고 한다.
시가 어떤 느낌인지 조금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영어 원문과 여러 번역본을 비교 대조하면서 느낌이라도 알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All in the golden afternoon
Full leisurely we glide;
For both our oars, with little skill,
By little hands are plied,
While little hands make vain pretence
Our wanderings to guide.

Ah, cruel Three! In such an hour,
Beneath such dreamy weather,
To beg a tale of breath too weak
To stir the tiniest feather!
Yet what can one poor voice avail
Against three tongues together?

Imperious Prima flashes forth
Her edict 'to begin it':
In gentler tone Secunda hopes
'There will be nonsense in it!'
While Tertia interrupts the tale
Not more than once a minute.

Anon, to sudden silence won,
In fancy they pursue
The dream-child moving through a land
Of wonders wild and new,
In friendly chat with bird or beast –
And half believe it true.

And ever, as the story drained
The wells of fancy dry,
And faintly strove that weary one
To put the subject by,
'The rest next time –' 'It is next time!'
The happy voices cry.

Thus grew the tale of Wonderland:
Thus slowly, one by one,
Its quaint events were hammered out –
And now the tale is done,
And home we steer, a merry crew,
Beneath the setting sun.

Alice! A childish story take,
And, with a gentle hand
Lay it where Childhood's dreams are twined
In Memory's mystic band,
Like pilgrim's wither'd wreath of flowers
Pluck'd in a far-off land.

일단 문법적인걸 전부!!!! 제외하고 그냥 이 시의 분위기만이라도 먼저 파악해보자. 뭔 소린지 도통 모르겠어서 아예 그 모르는 부분이 신비감까지 자아낼 정도인 것은 이 시의 분위기 자체가 읽히지 않아서 그렇다. 

루이스 캐롤. 본명도 아니다. 실제 이름은 찰스 도지슨이다.

루이스 캐롤이 친구인 딘 리들의 세 아이를 즐겁게 하려고 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이다. 루이스 캐롤은 평생 독신이었다. 요즘 시대에도 친구 애들이랑 놀아주는 이모나 삼촌들이 즐거워하듯 친구의 예쁜 조카들과 함께 노는 것이 루이스 캐롤에게는 퍽 즐거웠을 것이다. 뭐 루이스 캐롤이 아동성애자였다느니 이집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느니 하는 소리는 진짜인지 여부도 모를 뿐더러 여기서는 굳이 생각하지 않도록 하겠다.

자아, 이렇게 아름다운 오후에, 햇살은 너무나 따사롭고, 날씨는 아름답고, 물은 잔잔하고, 루이스 캐롤과 친구, 세 아이는 모두 함께 즐겁게 조각배를 저으며 오후를 만끽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리들(Liddell)가 세 아이들의 실제 사진

세 아이들은 예쁜 나들이 옷을 입고 고사리같은 손으로 노를 저으며 여기로 가자, 저기로 가자, 신나게 떠들고, 조각배는 매끄러운 물 위를 미끄러져 나간다. 한적한 오후를 즐기고 있던 아이들은 곧 심심해져서, 함께 나들이 나온 루이스 삼촌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재잘재잘 졸라댄다. 하도 종알거려서 도저히 마다할수가 없다.

"빨리요 빨리." "완전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해주세요." 루이스가 아이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를 시작하자 셋째는 계속해서 얘기에 끼어든다. "왜요?" "어째서요?" 

컬러로 복원한 사진인듯

얘기를 하다가 하다가 이제 이야기 보따리가 다 떨어져서 아이고 오늘은 여기서 끝~ 다음에~~ 했더니 아이들은 "싫어요" "지금 해주세요" "지금이 다음이에요" 하고 귀엽게 칭얼거린다. 그렇게 느릿느릿 이야기를 쥐어짜고 쥐어짜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 즐거운 조각배는 오후의 석양아래 집으로 향한다.

대충 이런 분위기

아,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커서도 이 이야기를 기억해줄까? 아마 잊어버리겠지. 석양의 느낌까지 더해지자 행복하지만 약간은 멜랑꼴리한 기분이 된다. 여름날의 오후가 영원할수 없듯, 우리들의 인생도 그렇다.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어린시절의 행복한 추억 속에 고이 간직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행복하면서도 약간은 울적한 기분을 자아내며 이 시는 끝난다.

이정도 알면 됐다 싶은 분들은 굳이 시의 디테일까지는 몰라도 된다. 이런 느낌만 충만하게 느껴도 이 시를 거의 다 안거나 마찬가지다. 시는 Kibun으로 느끼는거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읽어서는 알 수 없었던 시의 분위기가 확 와닿고, 왜 이 시가 아름다운지 조금은 알것같다면 성공이다. ‘golden afternoon’(황금빛 오후), ‘dreamy weather’(꿈같은 날씨), and ‘wreath of flowers’(화환) 등의 단어들이 이 시의 분위기를 더욱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만든다.

그래도 더 궁금한 분들은 디테일을 조금 보도록 하자. 왜냐면 한국어로 번역된 시를 읽고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 싶어 인터넷에서 추가로 검색을 해보는 분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 시는 6행짜리 스탠자(stanza) 7연으로 구성되어있다. 대따 어려운 얘기처럼 들리지만 무슨얘긴고 하니, 우리나라 시조에 3434/3434/3543 이런식으로 글자맞추어 음수율을 내듯 영국에도 스탠자라는 시의 형식이 있다. 4행 이상의 시에서 1/3행은 좀 자유롭게 적고 2/4행에서는 운율을 맞추는 거다. 무슨소린지 엄청 어렵겠지만 다시 1절 먼저 보자.  

All in the golden afternoon
Full leisurely we glide; 글라읻
For both our oars, with little skill,
By little hands are plied, 플라읻
While little hands make vain pretence
Our wanderings to guide. 가읻

1,3,5행은 조금 자유롭게 적혀있고 2, 4, 6행은 상대적으로 짧으면서 시의 맨 뒷 단어들을 읽어보면 전부 발음이 -d 로 끝나는 단어들을 갖다가 맞춰놨다. 시의 다른 절들을 보아도 전부 이 형식이다. 2연은 Weather(웨더) feather(페더) together(투게더) 로 ~ther 로 끝나는 단어들로 맞춰놓았음. 다른 연들을 보면서 엥 스펠링 다른데여?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소리내어 읽어'보자. pursue(펄수), new(누), true(트루) 이런식으로 맞춰져 있다.

iambic tetrameter(약강 4보격)은 이런 느낌이다. 

그리고 자유롭다고 느껴지는 1,3,5행도 약강 4보격으로 이루어져있는 절들이 있다. 어렵게 들리긴 하겠지만 무슨소린고 하니
문장의 액센트가 약/강/약/강 으로 쪼개지는 것으로, 약한 음절 뒤에 강한 음절이 따라 나오게된다.(고 한다) 이건 글을 보고 알 수 있는게 아니고 문장을 읽어봐야 알 수 있는것으로, 따 이런 심장뛰는 느낌이 나는 액센트의 문장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건 뭐 나도 네이티브가 아니어서.... 읽어보면 약하게 감이 오는 정도. 네이티브들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인것같다. 뭔소린지 모르고 넘어가도 되는데 정말 뭔소린지 궁금한 사람들은 아래 유튜브 영상을 참조해보자. (타임스탬프 찍어놓은 부분부터) 티텀 티텀 티텀 하는 액센트대로 시 읽어보세욤

 

 1연에는 little이란 단어가 3번이나 들어간다! 리틀이 3번이나 나오는 이유는, 리들 가의 3명의 아이들과 놀고 있었기 때문에 발음이 비슷한 little을 말장난 식으로 일부러 3번 넣었기 때문이다. 

3연을 보자.

Imperious Prima flashes forth
Her edict 'to begin it':
In gentler tone Secunda hopes
'There will be nonsense in it!'
While Tertia interrupts the tale
Not more than once a minute.

3연에 나오는 Prima, Secunda, Tertia는 라틴어로 첫째, 둘째, 셋째라는 뜻인데 리들 가의 세 아이를 말한다. 왜 라틴어로 썼냐면 영어로 first, second, third 라고 쓰는것 보다 좀 더 사람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고(한국에서 일남이, 이녀, 삼식이 이런식으로 표현하는 느낌) 또 그리스의 운명의 세 여신(모이라이)를 생각나게 만들기 위해서다. 운명의 세 여신은 우리한텐 전혀 안 와 닿을수 있지만 서구권에서는 아주 친근한 개념이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삼신할매를 알고 있듯).

맡은 일까지 진짜 삼신할매랑 비슷한 개념이다. 3명일 뿐 

첫째 클로소, 둘째 라케시스, 셋쩨 아트로포스 로 이루어진 이 여신들은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는 실을 관리하는데 첫째가 실을 자으면 둘째는 이를 감아가며 길이를 정하고 막내는 인간의 목숨이 다하면 그 실을 끊는다고 한다. 
이 3연에서도 보면 첫째는 'to begin it'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들고 둘째는 'There will be nonsense in it!' 내용을 정하며 셋째는 interrupts the tale 이야기를 끊는다. 그러므로 루이스 캐롤은 리들 가의 세 자매를 운명의 세 여신에 빗대어 언어유희를 한 셈이다. 

And ever, as the story drained
The wells of fancy dry,
And faintly strove that weary one
To put the subject by,
'The rest next time –' 'It is next time!'
The happy voices cry.

5연에서는 "weary one"(지친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이야기를 해주느라 지친 루이스 캐롤 자신을 얘기하는 것이다.(ㅋㅋㅋ 구엽) 나중에 앨리스 리들이 'The rest next time –' 'It is next time!' 부분에 대해 회상하기를, 캐롤이 얘기하다가 "자, 이후 얘기는 다음에 해줄게"라고 했는데 앨리스와 두 동생들이 "지금이 다음인걸요!" 하고 우겨서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고 한다.ㅋㅋㅋㅋ

Thus grew the tale of Wonderland:
Thus slowly, one by one,
Its quaint events were hammered out
And now the tale is done,
And home we steer, a merry crew,
Beneath the setting sun.

6연은 앞의 내용을 다시 간단하게 요약하여 정리해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잘 비유하여 쓴 절이다. 
이렇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가 생겨났다. 세 명의 아이들이 계속하여 졸라대어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야기를 듣고 끝이 난다. 그 후에는 아름다운 석양 아래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1행에는 "wonderland(우리나라는 이상한 나라로 번역되었지만, wonderland는 동화속 나라에 가깝다)"의 이야기가 grow, 즉 자라났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wonderland는 앨리스가 들어간 동화속 나라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뜻한다. 상상과, 희망과, 두려움까지 모든것이 가득한 세상. 거기다 grow라는 단어는 보통 생물의 성장에 쓰는 단어로 사실 '이야기'는 생물이 아니므로 자라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를 'grow(자라나다)'라고 표현하면서 이 이야기가 더욱 삶(wonderland)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그리고 천천히, 하나씩, 이상한 나라의 요상하고 특이한 사건들이 'hammered out' 튀어나온다고 표현되어있다. 한국어 사전에는 물론 '쥐어짜서 문제를 해결하다'등의 뜻이 나와있지만, 사실 hammer는 망치이므로, 망치로 땅 쳐서 무언가를 딱 해결하는 모습, 이 소설에서는 망치로 땅 치듯,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되겠다. 또한 망치라는 단어와 운명의 세 여신을 조합해보면 그리스 신 헤파이스토스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헤파이스토스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신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그렇게도 비유될 수 있다는 점.

시의 첫 부분에는 아직 쨍한 오후였는데 이야기를 끝나고 보니 setting sun, 해가 지고 있다. 여름날의 젊은 태양이 지나가고, 이제 삶이 저물듯 태양도 저물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가 루이스 캐롤이 그냥 아이들과 뱃놀이를 하다가 아이들이 졸라서 지어낸 이야기인 만큼, 첫째아이인 앨리스 리들이 "이야기를 책으로 적어달라"고 조르지 않았으면 이야기는 그냥 사라졌을 것이다. 앨리스가 조르자 루이스는 자신이 한 이야기를 다시 책으로 직접 써서 앨리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다. 

루이스 캐롤이 직접 쓴 초판본 

이 1부밖에 없던 책은 결국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으로 출판되게 되었고, (이때 출판된 초본은 전세계에 22권밖에 남지 않아 경매에 나올때마다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ㅎㅎ) 루이스 캐롤은 책 앞에 적어둔 '여름날을 기억하는 친애하는 아이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이라는 부분을 지우고 (앨리스 리들에게만 주는 것이었으니까) 그 대신 이 시 "all in the golden afternoon"을 추가하게 된 것이다. 루이스 캐롤 스스로도 어린아이들에게는 이야기가 약간 기괴하고 무서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시를 통해 이 동화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말해줌으로서 아이들의 무서움을 없애고 이상한 나라로 가는 관문이 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의 마지막 7연은 이 책의 원래 주인인 앨리스에게 헌정하고 있는데,

Alice! A childish story take,
And, with a gentle hand
Lay it where Childhood's dreams are twined
In Memory's mystic band,
Like pilgrim's wither'd wreath of flowers
Pluck'd in a far-off land.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원더랜드'에 대한 기억을 영원케 해주는 구절이다. 
어린시절의 꿈이 포개진 곳에 순례자의 꽃다발 처럼 이 이야기를 영원히 놓아달라는, 그런 부탁으로 시를 마무리 짓는다.

외국 시는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지만, 원문의 뜻이나 배경을 어느정도 알고보면 그래도 좀 더 이해가 된다는 것을 ㅎㅎㅎ 
정말 읽는것만으로 여름 오후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와닿는,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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